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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Hacks/알쓸신잡 2022. 12. 23. 23:11

    어제에 이어 오늘도 크리스마스가 주제다. 당장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딱히 다른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신나 있기도 하고, '내일 저녁 준비를 뭘로 할까?' 라던지 '파티는 어떻게 해볼까?'라던지 따위의 생각들 때문에 글쓰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시간이 있었다면 크리스마스에 먹는 음식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지만 특수한 휴일을 앞둔 엄마의 하루는 그리 한가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그리기 쉬운 그림을 그렸다.


    크리스마스 트리 옷을 입은 여자아이와 눈사람 옷을 입은 여자 어른을 그린 그림.
    CLIP STUDIO / 샤프 팬슬, 수채화 / Oddsundry




    나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는 즐겁지 않았다. 7살에 다니던 교회는 헌금을 내지 않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5살 동생과 집 근처에 있던 그 교회를 가면 어른들의 눈치에 편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들과 함께 말끔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나온 아이들은 환대를 받고, 그러지 못했던 동생과 나는 행사 끝까지 있기도 힘들었다. 나와 동생 말고도 엄마가 점쟁이였던 같은 동네 친구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세례명이 없는 아이들은 불청객이었다. 단순히 크리스마스 선물에 벌레들이 꼬인 것 마냥 과자 몇 개로 집에 가주길 바랐다. 어려도 불편한 게 뭔지는 확실히 알기 때문에 나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란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던 건, 그 당시 즐겨봤던 딩동댕 유치원과 뽀뽀뽀를 통해서다. 교회나 성당에서는 눈치만 줬는데 텔레비전 속 친구들은 가난 한 사람에게 빵을 나눠주고 산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머리맡에 선물을 주는 거란 걸 알려줬다. 사실, 나는 7살이 되기도 전에 산타가 없단 걸 알았다. 슬프게도 현실을 먼저 알아버려서, 설레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8살쯤엔 아빠 일이 잘 되고, 현금으로 세탁기도 사고 냉장고도 사고할 만큼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 엄마가 용돈도 줬기 때문에 간식도 사 먹을 수 있었다. 겨울 무렵, 용돈이나 가끔 친척분들이 주는 돈을 모아 뒀다가 나름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로 했다.


    12월 24일 밤 모두의 머리맡에 각자의 양말을 놓고 자도록 요청했다. 동참하지 않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동생만은 몹시 설레하며 양말을 머리맡에 놓았다. 엄마아빠의 양말은 내가 대충 머리맡에 놓아 드렸다.

    깊은 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잠든 걸 확인하고는 미리 준비해뒀던 엄마 립스틱, 아빠 은단, 동생 풍선껌 선물을 머리맡의 양말에 넣고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의 신나 하는 환호성에 더불어 기뻤다가, 엄마 아빠의 무덤덤한 반응에 세상 슬퍼졌다. 진짜 슬펐다. 그래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볼륨으로 엉엉 울어댔다.

    나는 엄마랑 아빠의 선물도 준비해서, 산타할아버지 대신 머리맡에 놓아줬는데 왜 선물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안 하고 심지어 내가 선물을 줬다고 해도 반응이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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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고맙다 하고, 아빠는 마냥 웃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도 선물을 받거나, 칭찬이라도 받고 싶었다. 아침 내내 울고 있는데, 10시쯤 마당 대문으로 큰아빠랑 큰엄마가 들어오셨다. 평소 큰아빠가 나를 많이 예뻐하셨는데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울음 반 하소연 반 중얼중얼거리다 결국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다 외치고야 말았다.

    큰아빠는 허허 웃으시며 나를 안고 동네 팬시점으로 향했다. '우리 공주 갖고 싶은 거 다 골라!'라며 팬시점 인형 코너에 나를 내려놓으셨다. 거기서 나는 제일 큰 강아지 인형을 골랐고, 그걸 품에 안고 집에 와서는 또 엄마한테 혼났지.

    내가 이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그만큼 깊은 상처였다. 여전히 이때의 일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고작 8살이었는데, 엄마 아빠 나빴어.

    어린이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며, 영영 잊혀지지 않기도 한다. 어리기 때문에 더 길게 기억할 가능성도 높다. 어리다고 금방 까먹고, 잊어주는 게 아니다. 어리기 때문에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상처는 흉터로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꼭 기억이 난다.

    나의 어린 시절 속 크리스마스는 온갖 종류의 어른들이 못난이 행동을 보였던 날들로 기억한다. 어른이 되고서는 되려 좋은 추억이 많아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엄마가 되어 준비하는 크리스마스는 각오가 남다르다.

    첫 번째, 무엇보다 어린이가 즐거워야 한다. 또 첫 번째, 어린이가 행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5일 아침에는 절대 울지 않아야 한다도 첫 번째다. 하나라도 우선순위가 밀리면 안 되니까 전부 첫 번째다.

    마치 우영우에 나왔던 방구뽕씨 같은 발언이지만 우리집 크리스마스는 저 규칙을 기준으로 준비된다. 어린이도 되고, 어른이도 되고 누구나 즐겁고 행복해서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울지만 않는다면 뭐든 좋다.

    이제 D-2. 이제 곧 그날이 온다. 행복할 일만, 즐거울 일만, 웃을 일만 가득할 그날이 곧 온다. 어린 나에 대한 보상 같은 지금의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쓸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괜찮을 날이라 기분이 좋다.

    그나저나, 내일 파티 음식은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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