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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내리는 하루 - 오후편
    Life Hacks/알쓸신잡 2022. 12. 16. 17:45

    오전부터 내리던 눈은 눈송이의 크기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늦은 오후까지 내렸다. 김박사와 색이 사라진 집에서 뒹굴거리니 아이들 하원, 하교 시간이다. 노는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흘러간다. 뽀로로와 친구들도 이래서 매일 아쉬워하는구나.

     

    겨울, 싫어!

    나는 추운 게 싫다. 추우면 잔뜩 움츠려 드는 어깨의 긴장감과 더불어 밀려오는 뻐근함이 싫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고 온 몸에 닭살들을 돋아나게 하는 차가움이 싫다. 싫은 게 잔뜩인 추운 겨울에 눈이 내려 발 끝 마저 얼 것 같은 저 처참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4시 30분이, 싫다. 아아아아- 나가기 싫다!

     

    그래도 어떡해, 내가 엄만데. 애들은 데리러 가야지.. 조금 전에 도착한 큰아이는 놀이터에 간다며 핫초코를 뜨끈하게 타 달라길래 보온병에 챙겨 줬다. 눈은 아이들을 신나게 만든다. 나도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나이는 눈과 등지게 한다.

     

    놀이터에서 노는 큰아이를 눈에 찜해두고선, 하원 차량 도착 장소로 향한다. 바람이 분다. 오늘은 내가 애들한테 집에 가자고 조르기를 시전 해야 될 것 같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눈을 만져도 되는지, 밟아도 되는지, 누워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둘째들에게 차마 집에 가자고도 못하고 "누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고해하듯 말한다.

     

    평소라면 못 들을 만큼 작게 말했는데, 오늘은 잘 들리나 보다. 대답이 우렁차다. 도착한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와 놀고 있는 누나를 발견하고는 "누나, 안녕? 00 왔어!"라며 착실하게 귀가를 알린다. 사실 집에 들어가자고 조를 심산으로 장갑을 챙겨 나오지 않았던 터라, 잠시 아이들은 놀이터에 두고 어린이집 가방만 챙겨서 후다닥 집으로 돌아가 눈 오리 집게와 장갑들을 챙겨 나왔다.

     

     

    눈덩이 작업장

    장갑을 착용하는데만 각각 5분씩 소요하고, 겨우 눈놀이가 시작됐다. 내린 눈이 수분기가 많지 않아 포슬포슬 부스러지는 질감이었다. 눈이 잘 뭉쳐지지 않자 눈 사람을 만들고 싶던 아이들의 성화가 시작됐다. 첫 번째 순서인 아이의 눈 덩이 하나를 뭉치면 원하는 자리로 들고 가다 부셔먹고, 다음 아이의 눈덩이를 뭉치고 있으면 그 사이 눈덩이를 부셔먹은 첫 번째 순서의 아이가 되돌아온다.

     

    무한 눈덩이 제조가 시작됐다. 눈 오리 집게도 마찬가지다. 요령이 없는 아이들에게 눈 오리 집게는 눈을 쉽게 뭉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눈이 쉽게 눈 오리가 되지 않아서 짜증을 유발하는 도구다. 결국, 눈덩이와 눈 오리는 내가 다 만들게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추운 게 싫다. 몹시 싫은 게 겨울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부모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 건, 하기 싫지만 해야 될 일들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이다. 베스트셀러, 팔리는 키워드, 멋진 타이틀에는 그에 상응하는 희생 혹은 각오가 요구되는데 '엄마', '아빠', '부모'라는 타이틀은 오죽하겠나.

     

    오래되고 또 불멸인 타이틀을 거머쥔 나는 오늘도 겸허함을 배운다. 손이 몹시 시리고, 쟤네들이 자꾸 오리랑 눈덩이를 부숴버려서 계속 만들어야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줘야 한다.

     

     

    쓸쓸한 뒷모습의 눈 오리.
    두 번째 인생 같아 보이는 뒷모습의 눈 오리.

     

     

    이게 나의 의지이며 각오다. 눈덩이 하나하나, 눈 오리 한 마리 한 마리에 비장함도 담는다. 잘 만들어진 눈덩이와 눈 오리는 부서지지 않게 아이들 손에 올려주고 어딘가에 올려놓고 오라는 미션도 잊지 않는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라 해가 빨리 사라진 오후 5시. 짧은 눈놀이 시간을 뒤로하고 멋지게 동네 친구와 인사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만 불지 않았다면, 조금 더 놀았겠지만 바람은 참지 않지.

     

    추운 겨울 바깥 놀이 후 따뜻한 물로의 샤워는 아이들도 어른이 온천에 몸을 담갔을 때 내는 소리를 내게 한다. 겨울은 싫지만, 이 따뜻한 개운함은 나도 좋아한다. 그리고 보송하게 잘 마른 새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 겨울만이 줄 수 있는 그 포근함도 좋아한다. 갈아입을 옷이 차가울 땐, 머리 말리는 드라이기로 살짝 데워 입으면 건조기의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내가 살짝 전하는 겨울 꿀팁이다.

     

    샤워를 마치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핫초코를 마신다. 산타할아버지가 볼이 빨간 이유랑 쿠키와 우유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겨울은 춥다. 그런데 추운 계절이라 따뜻함을 그 어느 계절보다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싫은데 좋은 계절이다. 흐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