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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김장 - 배추 200 포기
    Life Hacks/알쓸신잡 2022. 12. 6. 20:39

    우리 집은 매 해 겨울마다 김장을 한다.

    김장과 김치

    김장을 하지 않는 집도 많아졌다지만, 우리 집만은 빼먹지 않는 연례행사로 김장을 하고 있다. 김장을 해서 늘 맛있게 김치를 먹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김장 문화'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참에 김장에 대해 좀 더 찾아보고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겠다.

     

    자랑스럽게도 김장은 2013년도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문명은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고 하는데 '김치를 만들고 나누기'를 김장이라고 써놓은 내용이 정겹다. 내가 생각했던 김장의 내용과 닮아 있으나, 유네스코가 요약해놓은 김장의 모습은 좀 더 전문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하고 적어두었다.

     

     

    유네스코의 요약에 의하면 김장은 한국 사람들이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것을 말하며, 한국인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합한 음식 문화로 지역 생태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한국인은 특수한 자연환경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개발했고 이 때문에 김장은 한국의 자연적 주거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데 집집마다 지역마다 김치 맛이 제각각인 건 이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우리 집도 외할머니는 강원도, 엄마는 전라북도, 할머니는 전라남도 사람인데 강원도 더하기 전라남도로 인해 진하지만 시원한 김치 맛을 보여준다. 외할머니의 김치라면 새우젓이 우선이고, 할머니의 김치라면 멸치젓이 우선인데 엄마는 너무 진한 멸치맛도 너무 시원한 김치 맛도 싫어해서 둘의 맛을 섞은 데다 엄마의 비법인 매실액을 넣어 김치를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우리 집 김치.

     

    이처럼 앞서 설명에서 들은 바와 같이 김장은 김치 담그는 사람이 사는 곳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각 집집마다의 김치 맛이 다른 이유의 비밀을 알아낸 것 같아 신난다. 유네스코의 요약을 좀 더 들여다보면 봄, 여름, 늦여름, 늦가을의 김장 준비가 나와있다.

     

    사실 나는 당장에 닥친 김장 준비도 산더미처럼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살 수 있는 젓갈 준비부터 시작해서 소금, 고추, 배추 이런 것까지 옛날에는 직접 다 준비했을 걸 생각하니 1년 농사는 김장을 위해서 했다고 봐도 결코 억측이 아닐 듯하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고 날씨를 예측해서 김장을 하고 김치를 담아 안정적인 조건을 찾고 적절한 온도도 맞춰야 비로소 맛있는 김치를 완성할 수 있다. 김장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일련의 과정만 놓고 보면 엄청난 일인 게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인은 김장을 한다.

     

    한국인의 김장

    김장은 한국 전역에서 오랫동안 행해진 음식 풍습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김치 재료를 구해서 김장을 담는다. 실질적으로 어지간한 한국인, 모든 한국인은 김장을 한다.

     

    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김장에 쓰이는 특별한 비법과 재료는 세대를 통해 전승되어 중요한 가족 유산으로 남는다. 김장 지식은 한국 여인네들의 노동을 통해 구전 전승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김장을 하면서 말이다!

     

    김장하는 날이면 아는 동네 이모들,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집으로 찾아오신다. 가볍게 차를 마시고 각자의 김장 태세를 갖춘 후 마당에 넓게 펼쳐놓은 자리에 앉아 버무리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요즘은 집안 남자들이 절인 배추의 꼭지를 정리한다거나 양념을 버무리는 장소로 퍼다 나르고 김치를 다 담은 김치통을 옮겨 닦아서 정리하는 등의 일을 돕는다.

     

    모두가 밖에서 일할 때, 한 사람은 집 안에서 고기를 삶아 새참 마냥 삶은 고기를 밖으로 내온다. 그러면 이제 막 버무린 김치와 뜨끈한 수육을 싸 먹으며 잠시 잠깐 쉬는 시간도 가지는데 이 수육과 김장 김치를 싸 먹는 순간이야 말로 김장의 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배부른 휴식을 뒤로하고 시간이 더 지나 김장을 하던 모두가 굳은 허리와 다리를 펼 때쯤이면 그 많던 배추는 모두 김치가 되어 통에 담겨 있다. 품삯 대신이랄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빈 김치통이 아니라 김치가 가득 담긴 묵직한 김치통을 가져가게 된다. 피곤할 법도 한 고된 일이지만 통 가득 담긴 김치가 주는 무거움이 사뭇 든든해서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산 처럼 쌓여 있는 절인 배추 200 포기
    산 처럼 쌓여있는 절인 배추 200 포기.

     

    올해 우리 집 김장은 외할머니의 배추농사 풍년으로 아주 많은 양을 해내야 했다. 200포기라는 배추는 아주 많았고, 배추를 뽑고 절이고 양념하고 절인 배추의 물을 빼는 데까지만 3일이 걸렸다.

     

    김장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적극적으로 처음 참여해 본 이번 김장은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온 가족, 아는 사람들, 동네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 냉장고까지 김치를 채울 수 있어서 보람찼던 김장 일대기였지.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김장이란 김치를 만들어 내는 그 자체를 말하는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모두가 모여 김치를 만들고 이야기하고 그 해의 김치 맛을 결정하는 그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도 맞다. 더불어 힘든 일을 돕고 나누고, 즐기며 임하는 김장을 대하는 태도가 김장이라는 문화의 본질 아닐까?

     

    김장은 한국인의 문화이자 전통이며 삶이다. 다른 나라의 어떤 이들이 따라 해도, 본질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치와 더불어 김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연스러움은 한국인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당연함일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이번 김장 김치도 잘 담가졌다. 처음 새 김치를 먹다가, 다시 작년 묵은지로 겨울을 보내고 내년 늦봄쯤 지금의 김치를 꺼내면 또 달라진 맛을 만날 수 있겠지!

     

    아래 링크는 또 다른 에세이 입니다.

    낡은 기록

     

    낡은 기록

    오래된 것에 대하여 옷장 속 상자 안에 고이 모여있던 초등학생 시절 성적표, 예쁘다며 모아뒀던 병뚜껑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냄새나는 스웨터 등 버려야 할 물건들이 어째서인지 엄마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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