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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집 어르신 김박사
    Pet friends 2022. 11. 19. 18:24

     

    우리 집 푸들인 김박사를 그린 그림.
    이래뵈도 12살 어르신, 김박사.

     


     

    겨울 이때쯤

    겨울이었나. 아마도 처음 만났던 계절이 지금과 닮았다. 만 2세 정도 되는 푸들을 데려갈 수 있겠냐는 파양 글이 올라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제가 데려와도 될까요?'하고 댓글을 달았었다. 그렇게 두 시간 즈음 지나 김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파양의 진짜 이유는 모르겠으나, 전 주인께선 본인이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뜻의 다른 말들을 변명처럼, 미안한 마음 가득 쏟아내셨다. 덕분에 나는 멋진 친구와 가족이 될 수 있었지만, 김박사에게도 좋은 일이었을지에 대해서 지금도 생각하게 된다. 사는 환경도 음식도 물질적인 것은 전 주인이 훨씬 잘해 줬을 것 같았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김박사를 만난 곳은 주상복합의 소위 부자 동네.

    김박사의 본명은 '루루'였다. 집에 돌아와서 이 똑똑한 아이가 본인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받아들여줄까 싶었지만 이내 김박사라는 이름을 인정(?)해 주었다. 이름의 의미는 깊지 않다. 단순히 똑똑해서 김박사라고 했다. 많이 똑똑하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데에는 2주 정도 걸렸고, 그 사이 사람이 먹는 음식 때문에 생겼던 피부병도 차분히 치료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적응하고 김박사와의 즐거운 일상 그리고 평범한 일상, 혼란한 이벤트를 거쳐 지금 김박사의 나이는 12살이 되었다. 굉장히 동안의 얼굴로 늙어가는 중이라 외모로는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박사는 어릴 때도 많이 자더니 늙어가는 지금 다시 잠이 늘었다. 사람의 흐름과 비슷하게 닮아있는데 신생아-유아-아동-어린이- 청소년-젊은 어른-나이 든 어른을 거치며 늙어가는 동안 점점 잠이 줄었다가 다시 잠이 는다. 우리 할머니는 매번 안 잤다거나 밤에 잠이 안 온다는데 그건 낮에 너무 많이 주무셔서 그런 거다. 김박사도 매번 안 잔 척한다.

     

    근데, 내가 다 봤다. 엄청 잔다. 늘 화들짝 안 잔 척할 때면 기억 속 할머니가 생각난다.

     

     

    새 친구는 어떨까?

    얼마 전 마을 카페에 고양이를 파양 하는 글이 올라왔다. 다리가 짧은 종인 먼치킨, 하얀색 털을 가진 아주 예쁜 아이였다.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 속의 강형욱 선생님이 나이 든 친구가 있을수록 다른 동물을 집에 데려오지 말라며, 새로운 친구를 보면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일순간 혹했던 마음마저 김박사에게 미안해졌다.

    사실 김박사와의 이별 후엔 다른 멍멍이나 고양이나 그 외의 동물 등과 함께 할 생각이 없다. 몇 번씩 고비는 오겠지만 김박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각오랄까 마음의 준비와 더불어 마음을 닫는 연습이랄까.
    인간은 가족이 죽으면 쓸쓸하다고 다른 가족을 데려오진 않는다. 반려견이 가족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동물들의 귀여운 외모나 행동에 늘 흔들리겠지. 작은 마음은 매번 흔들릴 거다.

    애초에 나는 김박사와 헤어질 수 있을까?

    글을 쓰다 보니 슬퍼졌다. 내용의 흐름이 '노견을 소개합니다.'에서 '늙어서 곧 죽으면 어쩌지'로 흘러가고 있다.


     

    김박사와 나는 잘 지낸다.

    다시, 시작하자면 나는 지금의 김박사와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매번 의문이자 나만의 확신인 행복이지만 되도록이면 그렇다고 믿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김박사의 목욕한 지 3일쯤 후부터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얼굴 부비부비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떠나보낸 후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김박사와 함께 아침 과일을 먹는다.

     

    배변을 청소하고 간식을 챙겨주면 오전 10시. 이따금 혼자 컴퓨터를 할 때면 옆자리에 와선 올려달라고 긁는다. 요샌 다리가 아픈지 산책 시간이 5분도 안된다. 억지로 산책시키면 힘들어하고, 또 안아주려 해도 불편해하니 창문을 열어둔다. 추워서인지 창문 콧바람도 너무 짧다. 날씨가 좋을 땐,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낮동안에 서로의 생활을 보내고 오후 4시쯤이 되면, 김박사는 밥을 먹는다. 물도 마시고 이방 저 방 냄새를 맡으며 걸어 다닌다. 아, 최근 가는귀가 멀어서 소리에는 덜 예민한데 어째서인지 간식 냄새만은 기가 막히게 잘 안다. 후각이 더 예민해진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본다.

     

    그리고 5시쯤 아이들 모두가 모일 때면 본인도 덩달아 바쁘다. 이 아이 저 아이 인사는 대충 하고 아이들이 간식을 주나 안주나 쳐다보느라 제일 바쁘다. 그리고 대망의 아빠 오는 시간. 7시에서 8시 사이가 되면 미어캣이 된다. 귀가 잘 안 들리니까, 조금 큰 소리가 나면 그냥 짖는다, 왕! 아빠가 왔다는 걸 알리는 소리인데, 틀릴 때가 많다.

     

    저녁 먹을 때가 되면 꼭 나와 신랑 사이의 의자에 앉아서 식탁 위에 턱을 올린다. 뭐라도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더 어려서는 버릇 나빠질까 봐 사람 먹을 때는 안 줬었는데, 요새는 김박사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해서 같이 저녁을 먹는다. 이따금 사람 먹는 음식도 준다. 물론, 간이 세지 않은 걸로.

    밤 9시. 모두가 자러 들어가면서 인사를 한다. 김박사와의 인사는 10시쯤으로 늦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박사는 거실에 불이 꺼지면 토도도도 하며 돌아다닌다. 그러다 10시쯤 잠자리를 벅벅 긁으며 본인 편한 자리로 만든 후 자려는 의식을 끝마친다. 그러면 내가 나가서 잘 자라고 인사해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글로만 보면 김박사와 내가 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안아도 주고, 뽀뽀도 해주지만 눈곱도 떼어주고 발톱도 깎아주고 발 털도 밀어주고, 목욕도, 혼내는 것도 내가 해주다 보니 후자만 기억하고는 날 안 좋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무섭거나 어려우면 나한테 오는 걸 보면 그냥 엄마인가 보다.

     

    나는 엄마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오늘도 즐겁게 보냈다.

     

    그러니 내일도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김박사님.
    우리 내일도 잘 지내봐요. 그리고 간식은 하루에 덴탈껌 1개, 개츄르 1개, 과일 2조각인데
    왜 자꾸 욕심내요? 사실 저거 말고도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우리 쫌 그러지 맙시다.
    그리고 동생 방 침대 자꾸 헤집어 놓지 마요. 싫다는데, 왜 자꾸 가서 누워있어요. 내 소파 내줬잖아요.
    싸우지 좀 맙시다.